티스토리 뷰

농협정보

농협의 역사 - 농협체제의 변천

NH Recruit Info 2015. 7. 16. 14:29

농협체제의 변천

농협의 출발 초기 계통조직은 단위조합(이동조합), 지역연합회(시군조합), 중앙연합회(농협중앙회)의 3단계 체계로서 선진국의 농업협동조합체계와 비슷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엄밀하게 보면 선진국의 3단계 조직체계와는 달랐다. 유럽의 농협이나 일본의 농협은 사업을 하는 전국연합회가 있고, 상위조직으로서 농협을 대표하며 지도·교육, 감독, 권익대변 등을 하는 비사업 전국연합회 또는 중앙회가 있다. 즉 3단계의 사업조직 위에 중앙회체제를 갖는 형태가 일반적이나, 한국 농협은 사업조직인 전국연합회와 최상위 대표조직(umbrella organization)이 하나로 통합된 형태였다. 따라서 중앙회는 다른 나라의 농협중앙회와 달리 조직과 사업이 비대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특징을 갖게 되었다. 특히 출범 초기에 단위조합인 이동조합이 조직만 되었지 사업을 할 수 없었고, 시·군조합 역시 영세한 상태였기 때문에 중요한 기능과 역할이 중앙회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구 농협과 농업은행이 통합되었지만 기초조직인 이동조합은 그대로였기 때문에 여전히 조합으로서 기능하지 못했다. 새농협의 출범과 함께 조합설립 및 조합가입운동을 전개하여 조합과 조합원 수는 크게 늘었지만 조합의 기능은 미약했다. 1962년 1개 조합당 평균 조합원수는 101명이었다. 조합장을 마을이장이 겸임했다. 이동조합이 하는 일은 시군조합에서 배분하는 농사자금과 비료 등 농자재를 조합원들에게 전달하는 정도였다. 일부 조합에서는 수건, 설탕 등 생활필수품을 판매하기도 하였지만 사업량은 아주 미미했다.
이동조합을 키워서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시급하였기 때문에 이동조합 합병운동이 전개되었다. 1964~1967년까지 1차 합병운동은 기존 이동조합의 2배 정도인 조합원 200명 이상의 조합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전개되었으나 성과는 극히 부진했다. 1968~1972년까지 전개된 2차 합병운동은 읍·면당 1개의 단위조합 설립을 목표로 추진되었다. 그 결과 1967년 16,963개 이동조합이 1973년에는 1,567개 단위조합으로 줄어들었고, 평균조합원 수는 132명에서 1,393명으로 증가했다. 당시의 합병 추진은 법에 의하지 않고 농협중앙회가 자체적으로 추진하였다.
읍·면단위 단위조합 체제가 구축된 다음부터 단위조합은 조합으로서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조합의 업무만을 전담하는 조합장과 직원을 확보하고, 사무실, 매장, 창고를 갖추었다. 시군조합으로부터 비료, 농약, 농사자금, 공제사업을 이관받아 조합원을 대상으로 직접 사업을 수행하였다. 1973년부터는 전국적으로 상호금융을 실시하여 명실상부하게 신용과 경제를 겸영하는 종합농협이 되었다. 생활물자사업을 시작하고 연쇄점을 개설하여 농촌사회의 중심센터로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는 단위조합이 지원하는 지역개발사업인 새마을종합개발사업이 추진되기도 하였다. 단위조합은 조직과 사업기반을 구축한 이후 급격한 성장을 시작했다. 종합농협체제로 전환하고도 또 12년을 기다려 활주로에서 이륙하여 성장궤도에 진입하였다고 할 수 있다.
단위조합은 점차 경영기반을 확충하면서 각종 사업을 도입하고 확대해갔다. 1970년대 중반까지 시군조합이 담당하였던 각종 사업기능이 단위조합으로 거의 이관되었다. 교통·통신의 발달로 생활권역이 확대되면서, 시군조합과 단위조합의 영역 중복, 사업 중복, 기능 중복 등의 문제가 조심스럽게 거론되었다. 1977년 농협중앙회는 농협운영제도개선위원회를 구성하고 이 문제를 다루었다. 결론으로 농협의 조직체계를 중앙회와 단위조합의 2단계 조직으로 개편하자는 안을 도출했으나, 중앙회의 정책으로 수용되지는 않았다. 1980년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 정권은 국민의 환심을 사기위한 정책을 필요로 했다. 급속한 산업화와 함께 농업도 빠르게 성장하였으나 농업과 비농업의 성장격차가 커지고, 상업농화가 진전되면서 농산물 가격불안정에 따른 소득 및 경영의 불안정성이 중요 정책과제로 부상했다. 이를 대처하는 대안으로 농협의 역할 증대가 요구되었고, 농협은 개혁대상이 되었다. 시군조합의 폐지는 현실적인 필요성도 있었고, 농업부문의 개혁의지를 보여주는 적절한 샘플이 되었다. 1980년 농협개혁으로 시군조합이 폐지되고 단위조합-중앙회의 2단계 구조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축협이 농협에서 분리되고 축협중앙회가 새로 설립되었다.
1987년 한국사회의 민주화 바람은 1988년 농협법 개정을 통해 농협 민주화도 실현시켰다. 새 법에 따라 조합장과 중앙회장의 직선제가 실시되고, 사업계획 및 수지예산에 대한 정부 승인제 폐지, 조합에 대한 지방행정기관의 감독권 폐지 등으로 농협의 자율성이 크게 신장되었다. 하지만 조합장과 중앙회장의 직선제 방식은 다른 나라의 협동조합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방식으로서, 농협 조직을 정치조직화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직선제의 폐해가 커지면서 폐지론이 점증되고 있지만 농협 민주화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어 직선제 폐지는 매우 어려운 과제가 되고 있다.

Comments